2021. 1. 4. 16:57ㆍHistory (역사)
신석기 시대(B.C. 8000년~) : ①간석기와 빗살무늬 토기 등, ②조·피·수수 등 농경의 시작, ③원형·방형의 반지하 움집, ④기타(가락바퀴와 뼈바늘, 치레걸이·조가비·여인상 등)
❑ 선사시대 : 문자가 사용되기 이전의 (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) 시대(↔역사시대)로, 사용하는 도구에 따라 석기·청동기·철기 시대로 나뉜다.
❑ 원시공동체사회(原始共同體社會) : (아직 생산력의 수준이 낮아서) 공동생산·공동분배를 하던 시기로, 인류가 출현한 이후 계급사회가 형성되기 전까지를 말한다. 구석기의 무리사회와 신석기의 씨족사회가 여기에 해당한다.
✔원시공동체사회에서는 계급이 발생하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에 구성원들 간에 평등한 공동체적 생활을 하였으며, 착취나 억압구조가 존재하지 않았다.
※ 구석기의 무리사회에서는 무리 중에서 경험이 많고 지혜로운 사람(➫연장자)이 지도자가 되었으나 권력을 갖지는 못하였다.
※ 신석기 시대에는 혈연을 중심으로 한 씨족이 족외혼을 통해 다른 씨족과 결합하여 부족사회를 형성하였다. 즉, 신석기 시대는 "혈연을 바탕으로 한 씨족 중심의 부족사회"였다.
간석기와 빗살무늬 토기 등
✔간석기(마제석기) : 돌을 갈아서 만든 석기로, 신석기 시대 및 청동기 시대에 주로 사용되었다. ①목공도구로 돌도끼·홈자귀·대팻날·끌 등이 있고, ②농경도구로 돌괭이·돌낫·반달돌칼·갈판 등이 있다.
※ 홈자귀와 반달돌칼 등은 청동기 시대부터 사용되었다.
✔빗살무늬 토기 등
❑ 신석기 시대의 토기 : 이른 민무늬 토기 → 덧무늬 토기(융기문 토기) → 눌러찍기무늬 토기(압인문 토기) → 빗살무늬 토기
※ 토기는 신석기 시대에 정착생활이 시작되면서 처음 등장하였는데, 주로 음식물을 조리하거나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.
✅이른 민무늬 토기 : 최초의 토기로 제작기술이 거칠고 크기가 작다.
✅덧무늬 토기(융기문 토기) : 표면에 점토띠를 덧붙인 토기로, 부산 동삼동 등에서 출토되었다.
✅눌러찍기무늬 토기(압인문 토기) : 손가락·동물뼈·나뭇가지 등으로 무늬를 찍은 토기로, 한반도의 남해안지역에서 많이 출토되었다.
✅빗살무늬 토기 :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로, 첨저형(뾰족한 바닥)은 서울 암사동 등에서, 평저형(평평한 바닥)은 양양 오산리 등에서 출토되었다.
※ 빗살무늬 토기는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된다. 다만, 한반도 전역에 균등하게 분포되어 있지는 않고, 주로 강가·해안가(바닷가) 또는 도서지방에서 출토된다.
조·피·수수 등 농경의 시작 ➨ 신석기 시대 후기에는 집 근처의 텃밭을 이용하여 조·피·수수 등의 잡곡을 재배하기 시작하였다.
❑ 신석기 혁명 : 농경과 목축의 시작
※ 수렵·채집 등 식량채집단계에 있던 인류가 (신석기 시대 후기에) 농경과 목축이라는 식량생산단계로 접어들게 되면서, 인류는 정착생활과 토기의 제작·사용을 시작하게 된다.
※ 신석기 시대 후기에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었으나 여전히 수렵·채집·어로가 식량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했다. 따라서 신석기 시대에는 주로 강가·해안가에 살았다.
※ 신석기 시대에는 주로 강가·해안가에 살면서 어패류를 많이 채취하였다. 신석기인들이 먹고 남긴 조개껍데기 및 여러 생활 쓰레기가 쌓인 것을 조개더미(패총)라고 한다.
※ 조개더미(패총)는 전국의 강가·해안가(부산 동삼동, 웅기 굴포리 서포항 등)에 분포한다.
❑ 원시신앙 : 자연현상 또는 자연물을 숭배하거나, 무당을 통해 신과 교류하는 신앙으로, 애니미즘, 샤머니즘, 토테미즘, 그리고 영혼·조상 숭배 등이 있다.
※ 신석기 시대에 농경이 시작되면서 자연환경이 농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고, 원시신앙이 나타났다.
✅애니미즘(animism) : 자연현상 또는 자연물(특히, 태양과 물) 등의 무생물에게도 영혼이 있다 믿는 것으로, 영혼불멸사상, 영혼숭배(조상숭배) 등이 관련 있다.
✅샤머니즘(shamanism) : (신과 같은) 초자연적인 존재와 직접적으로 교류·접촉하는 샤먼(무당)을 중심으로 하는 주술이나 종교로, 고조선의 단군, 삼한의 천군 등이 관련 있다.
✅토테미즘(totemism) : 특정한 동물이나 식물을 자신이 속한 집단(부족)과 연결시켜서 그 동물이나 식물(fe.곰, 호랑이, 떡갈나무 등)을 숭배하거나 집단(부족)의 상징으로 삼는 것으로, 단군신화(곰과 호랑이), 금와왕(개구리) 등이 관련 있다.
주의>신석기 시대 후기에는 벼농사를 지어 쌀을 주식으로 사용하였다. ❌ ➨ 벼농사는 청동기 시대에 시작되었고, 쌀이 주식으로 사용된 것은 그로부터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.
원형·방형의 반지하 움집
✔신석기 시대의 움집은
①원형 또는 모서리가 둥근 방형으로, 1m정도 땅을 파고 만든 반지하 움집이었다.
②(취사와 난방을 위한) 화덕이 중앙에 위치하고, 화덕이나 출입문 옆에 별도의 저장구덩을 설치하였다.
③4~5명 정도의 한 가족이 살기에 알맞은 크기였다.
✔신석기 시대의 주거지는 주로 강가·해안가에 있었으며,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는 주로 배산임수의 구릉지에 있었다.
기타(가락바퀴와 뼈바늘, 치레걸이·조가비·여인상 등)
✔가락바퀴와 뼈바늘
❑ 가락바퀴(방추차) : 실 만드는 도구
※ 가락바퀴와 뼈바늘을 통해 옷이나 그물을 짰음을 알 수 있다.(원시적 수공업, 직조기술)
※ 가락바퀴는 신석기 시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여, 청동기 시대에 이르러 널리 사용되었다.
✔치레걸이와 조가비·여인상 등
♦치레걸이 : 동물뼈나 조개껍데기를 이용하여 만든 장신구로, 신체나 의복에 붙여서 장식한 걸로 추정된다.
♦조가비 가면(조개껍데기 가면) ➨ 제례용품으로 사용된 걸로 추정된다.
♦흙으로 빚은 여인상(여성조각품) ➨ 다산이나 풍요를 기원한 것으로 추정된다. 울산 신암리 유적, 청진 농포동 유적 등에서 출토되었다.
'History (역사)' 카테고리의 다른 글
청동기 시대(B.C. 2000년~) (0) | 2021.01.19 |
---|---|
구석기 시대(70만년 전 ~ 1만년 전) (0) | 2020.12.25 |
사료(史料) 비판 (0) | 2020.12.16 |
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 (0) | 2020.12.12 |